T-50 수출무산 쇼크…"규제 과감하게 풀어 방산 수출 돕겠다"
- 작성일2018/10/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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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8-09-30
왕정홍 방위사업청장 인터뷰
"폐쇄적이고 내수 중심인 방위사업을 개방적이고 수출 주도형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입니다."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이 취임 후 매일경제와 첫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 고등훈련기 사업(APT)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고배를 마신 것과 관련해 '경쟁력 강화'와 '수출 증진'을 힘줘 강조했다. 이어 세계적 추세인 인공지능(AI)을 적용한 4차 산업혁명을 국방기술 연구개발(R&D)에 적극 적용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최근 '국방산업진흥회의'를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 진수식을 계기로 열고 정부 유관부처와 민간 분야를 포괄하는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특히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해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탰다.
KAI가 미국 APT 수주에 실패하면서 KAI의 협력 업체에도 연쇄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방위산업계의 수출 증진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메시지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왕 청장은 "국방산업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면서도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는 분야"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국가적인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왕 청장은 "이번에 개최된 국방산업진흥회의는 이처럼 중요성이 부각되는 분야를 정부가 지원하고 육성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도약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한 뒤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전문인력에게 이니셔티브를 확실히 보장하고 관련 법 제정을 추진해 제도적 기반을 갖추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회의에서 국방산업이 수출산업으로 도약하고 민간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주면 국가 경제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민·관·군이 협력해 수출형 산업구조로 바꿔 나가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국가별 수출 대상 맞춤형 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외교적으로도 측면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수출 경쟁력 강화와 맞물려 있는 것이 국방산업의 신뢰 회복과 비리 척결이다. 왕 청장은 이에 대해 "단편적인 규제 강화 방식으로 하다 보니 근원적 원인을 해소하는 데 부족했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방위사업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라고 진단한 뒤 "비리의 근본 원인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청장은 △군·산 유착을 근절하고 △경직적인 제도를 유연하게 개선해 비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을 제시했다. 무기 개발 과정에서 경직된 절차 때문에 이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경우를 언급한 것이었다.
왕 청장은 "군의 목표 성능이 현재 기술 수준보다 과도하게 높더라도 현행 제도하에서 이를 변경하기는 매우 힘들다"며 "방위사업 과정에 성능의 조작이나 비리 등 부정한 방법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데 필요한 경우 목표 성능을 합리적으로 수정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절차를 도입해 사업 효율성과 비리 예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나왔던 국방산업 발전 방안과의 차이점도 강조했다. 왕 청장은 "소수만 참여하는 방위산업을 깨뜨려 모두가 참여하는 국방산업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라며 "많은 국민이 '방위산업'을 몇몇 방산업체와 전문기관들이 나눠 먹는 정체되고 경직된 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산업 환경에서는 도전도,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책 프레임의 전환을 제시하며 △미래 첨단 기술에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국방 R&D를 도전적·창의적으로 전환하고 △다른 산업의 기업이나 타 부처에서도 더 쉽게 방위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문턱을 낮추며 △ 우리 방산 기업들이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더욱 과감하게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왕 청장은 "군에 가는 사람들은 계속 줄어드는 등 국방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방산업 기술이 나아가야 한다"며 "무인화되고 로봇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투입될 미래에 대비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국방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병사의 복무 기간이 단축되면 훈련 기간이 줄어들어 전투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상현실(VR) 기반의 전투 훈련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현장감 있는 훈련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왕 청장은 덧붙였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이 실제로 전장에서 구현되는 것이 정부 정책에도 반영되기 시작한 셈이다.
방위사업청은 국내에서 무기 개발과 구매 사업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기 때문에 방위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규제 일변도의 법체계 때문에 업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 출신으로 비리 척결에 우선할 것이라는 우려를 샀던 왕 청장은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감사원 출신으로서) 와서 보니까 의외로 방위산업이 중요함을 알게돼 잘 북돋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기를 만드는 회사들은 일반적인 회사들과 다르게 잘못되면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
왕 청장은 "미 고등훈련기 사업은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 어쩔 수 없이 수주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원래는 더 일찍 발표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가 늦게 나왔다"고 했다.
업계의 또 다른 불만은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방위사업 비리'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데 대한 억울함이다. 그는 "연구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성실수행인증제도를 확대하고 유연한 계약 제도를 담은 가칭 국방과학기술혁신촉진법을 제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왕 청장의 폐쇄적 구조를 바꾸겠다는 언급은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불만 중 하나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왕 청장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국방기술지식재산권을 개방하고자 한다"며 "민간 분야의 기초연구 성과가 국방 분야에 바로 적용될 수 있도록 원천기술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민·군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국제 공동 연구개발도 확대하겠다"고 제시했다.
왕 청장은 국방산업의 규모를 전반적으로 키우겠다는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 국방산업은 2022년까지 현재 세계 8위에서 한 단계 발돋움해 7위로 올라서고, 관련 일자리도 5만명까지 확대돼 국가 전략산업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두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