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보면 앞다퉈 "밥값 내겠다"..제복 존중하는 美
- 작성일2018/09/07 09:57
- 조회 497
2018-09-07
중앙일보
전쟁영웅 기리는 법.. 한국인 이름 딴 고속도로, 전사자 이름 새긴 맥주
군복 입은 군인엔 "Thank you for your service"
미국에서 최근 50년 전쯤 세상을 떠난 의원의 이름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습니다. 리처드 러셀 전 민주당 상원의원입니다. 상원에서 보낸 38년이란 세월 동안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공립학교에 무료로 또는 저가로 급식을 하도록 한 법을 만든 인물로 기억됩니다.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롤모델이었다고도 하죠. 109년 된 미 국회의사당 사무동 건물은 그의 업적을 기린다는 취지에서 47년째 러셀 빌딩으로 불립니다.
그가 갑자기 거론되기 시작한 건 ‘전쟁 영웅’으로 초당적 존경을 받아 온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사망하면서입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무엇도 그(매케인)의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그를 기억해야 한다”며 러셀 빌딩을 매케인 빌딩으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을 한 겁니다. 상원은 앞서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는 내용의 새 국방수권법 역시 ‘매케인법’이라고 부르며 매케인 의원에 존경을 표한 바 있죠.
유능한 정치인이라서 이기도 하겠지만 슈머 의원의 표현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나라와 군에 헌신했던’ 전쟁 영웅을 기리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요.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서 군인에 대한 존경이 유별난 미국에서 참전용사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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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한국인 이름 딴 OOO가 있다?
지난 2011년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에 포털사이트 MSN 닷컴이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 16명을 꼽았습니다. 여기에 포함된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는데요. 생전 ‘100% 미국인, 100%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칭한 재미교포 고(故) 김영옥(1919~2005년) 대령 입니다. 유색인종으로 유일하게 조지 워싱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군 출신 대통령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미군 장교로 참전했던 고(故) 김영옥 대령.
최근 그가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5번 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그의 이름을 따 ‘김영옥 고속도로(Colonel Young Oak Kim Memorial Highway)’로 명명되면서입니다. 주의회는 이 같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데요. 미국에서 고속도로에 개인의 이름이 붙은 것도 이례적인데, 무려 한국인의 이름이었으니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앞서 2009년에 로스앤젤레스(LA)에 그의 이름을 딴 공립중학교가 문을 열기도 했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부설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는 최초로 한인의 이름이 붙은 대학기구라고 합니다.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각별한 대우를 하는 걸까요. 김 대령은 미국을 포함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부터 20여개의 무공훈장을 받을 만큼 세계적인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습니다. 독립운동가 김순권의 아들로 LA에서 태어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소위로 참전해 공을 세웠는데요. 전쟁이 끝나고 제대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자원입대 해 강원도 최전선에서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싸웠습니다. 미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전투대대장을 맡은 그는 38선 중부전선을 60㎞나 북상케 한 인물이라고 소개됩니다.
2차 대전 때는 프랑스 동북부 보주산맥 인근 비브뤼에르 지역을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주역으로 프랑스인들에게도 ‘카피텐 김(김 대위)’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존재였죠. 2005년 프랑스 정부는 그의 공적을 다시 평가해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특히 더 추앙을 받는 건 전쟁 중 수백 명의 전쟁고아를 보살폈고, 30여 년의 군 생활 뒤에는 미 정·재계의 러브콜도 마다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여생을 바치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더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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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패 신화 ‘야수 탱크’엔 별 13개 가문 장군 이름
리차드 닉슨 전 대통령과(왼쪽)과 크레이튼 에이브람스 장군.
‘야수’ ‘드라큘라’라고 불리는 미국 최강 탱크 ‘M1 에이브럼스’를 아시나요. 전차전에서 단 한대도 파괴된 적이 없어 무패 신화의 위엄을 자랑한다고 많이들 표현합니다. 에이브럼스 역시 전쟁 영웅의 이름을 따온 건데요. 2차 대전, 베트남전 등에서 맹활약한 크레이튼 에이브럼스(1914~1974년) 장군입니다. 미군 최고의 탱크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고, 그에겐 ‘군인 중의 군인’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죠.
“나는 육군으로 최고의 전차 지휘관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나에겐 한 명의 동료가 있다. (크레이튼) 에이브럼스다. 그는 (전차전에서) 세계 챔피언이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명장 조지 패튼(1885~1945년) 장군은 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에이브럼스 장군의 아들 셋 역시 군인입니다. 부친과 3형제의 별만 합쳐서 13개라고 하죠. 한 때 차기 주한미군 사령관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로버트 에이브럼스가 아들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15년 미 조지아주 포트베닝 신병훈련소 숙소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 ‘에이브럼스 홀’로 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아버지의 초상화를 옆에 세워 둔 채 자랑스러운 소회를 밝히기도 했었죠.
그런가 하면 4년 전에는 2006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전사한 한인 군인을 추모하기 위해 뉴욕주 차파쿠아시에 추모다리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7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온 뒤 뉴욕주립대를 졸업한 그는 2001년 미 육군에 입대했는데요. 아랍어 특기로 해독임무를 맡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가 작전 수행 중 도로에 매설된 폭발물이 터지면서 34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사망한 고(故) 최규혁(1972~2006년) 하사입니다.
순국한 병사들의 용맹과 희생 정신을 기리고자 개인적으로 나선 이도 있습니다. 미국 방송사 ESPN에서 일하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미 해병대에 입대해 10년 간 복무한 참전 용사 세스 조던입니다. 250 차례나 전투를 치른 베테랑 장교 출신이죠.
그는 2012년 임무 수행 중 7명의 동료들을 잃은 걸 계기로, 2년 뒤 ‘도그 태그(군번줄) 브루잉’이란 특별한 수제 맥주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양질의 맥주 생산과 함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방침으로 삼았습니다.
도그태그 브루어링에서 생산한 맥주. 캔에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맥주 캔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전사자의 이름과 출신지, 사망 날짜 등이 적혀 있는데요. 웹사이트에도 전몰 장병의 이야기를 올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맥주를 판 수익금은 전부 공익재단에 기부돼 순국 장병의 가족을 칭하는 ‘골드 스타 패밀리’를 후원하는 데 쓰인다고 합니다.
잠시 미국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호수에 전사자들의 이름을 붙여 온 나라도 있습니다. 최소 200만개 이상으로 세계에서 호수가 가장 많이 있다는 캐나다입니다. 캐나다 정부는 1947년 이후로 호수에 전사자의 이름을 명명해왔다고 하네요. 지금껏 캐나다 서부에 있는 서스캐처원 주에만 4000개 넘는 호수에 군인의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매케인 의원의 얘기로 돌아갑니다.
“상원은 미국의 영웅을 오랜 시간 추모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 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러셀 빌딩을 매케인 빌딩으로 바꾸자는 슈머 의원의 제안에 대해 이견이 나오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하면서 전·현직 의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목표는 오직 매케인 의원을 기릴 최선의 방법을 찾자는 겁니다.
AP 통신에 따르면 상원 군사위원회가 쓰던 방의 이름을 매케인의 이름을 따 명명하는 것과 응접실에 걸린 헨리 클레이, 대니얼 웹스터, 로버트 태프트 같은 역대 인물들 옆에 매케인의 초상을 거는 방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하죠. 어떤 식으로든 영웅 매케인에 끝까지 최고의 예를 갖추자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지 않나요.
전사자는 물론 한 명의 동료도 전장에 버려두지 않는다는 미군의 철칙과 참전 용사들에 대한 지극한 예우,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영웅 만들기를 통해 애국심을 끌어올릴 필요도 있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모병제임에도 자원 입대자의 수가 줄지 않고 가장 존경하는 직업 상위엔 군인이 포함되며 어느 곳보다 신뢰받는 집단이 교회도 대학도 아닌 군대라는 사실, 단순히 제도가 다른 먼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할 게 아니라 이것이 던지는 의미를 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군복 입었으면 “Thank you for your service”
「 한 커피숍에 군복을 입은 군인이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는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남성이 있습니다. 군인에 사진을 찍어 달라며 다가온 앳된 소년은 곧 정체모를 남성의 앞으로 가 이렇게 말하는데요.
“당신도 영웅인가요? 군인 아저씨가 말해줬어요. 함께 사진 찍어주세요.”
퇴역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자는 취지로 미국에서 제작된 공익광고 장면
팔뚝에 새겨져 있던 베트남 참전 용사 표시를 알아차린 군인이 소년에게 남성의 존재를 알렸던 겁니다. 곧이어 군인은 퇴역군인 앞으로 가 “Thank you for your service(봉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합니다. 이 군인 역시 앞서 다른 손님으로부터 이런 인사를 받기도 했죠. 참고로 미국에선 군인을 보면 누구든 이렇게 말하는 게 흔한 풍경입니다.
묘사한 장면은 퇴역군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자는 취지로 미국에서 제작된 공익광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영상은 “당신이 베테랑(퇴역군인)을 만나면 그들의 복무에 감사하십시오. 그 단어가 얼마나 강력한 지 당신은 알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하죠.
미국 공항에선 “군인이 있으면 먼저 탑승하라”는 방송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밀리터리 프리보딩(pre-boarding·우선 탑승)’입니다. 비행기에 군인이 타면 항공사 직원이 이를 알린 뒤 감사 마음을 전하고, 승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끌어내는 일도 흔하죠. 야구장, 농구장에선 종종 휴식시간에 베테랑들을 일어나게 해 경의를 표하곤 합니다.
비행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할 때 우선 혜택을 받기도 하고 식당에서 장병의 음식값을 대신 지불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공항에서 휴가 가는 군인에게 일면식 없는 할머니가 용돈을 주는 식의 미담이 수없이 많습니다.
미국의 한 항공사는 정복 차림의 군인에 무례하게 했다가 승객들의 비난이 쏟아져 장문의 사과와 함께 군인 탑승객에 대한 우대정책까지 발표한 적이 있죠.
미국인들이 평소 군인과 군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예우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일 겁니다. 」
황수연 기자
https://news.v.daum.net/v/20180907010048202?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