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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50에 수리온까지…방산수출 실패 원인은
    • 작성일2019/01/10 09:31
    • 조회 420

    [세계일보]   

    2019.01.09 

    정부가 공을 들여왔던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이 무산됐다. 필리핀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해 생산한 수리온 대신 미국 록히드마틴의 UH-60 블랙호크 헬기를 선택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6일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필리핀 정부가 미국제 헬기를 구매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받았다”고 전했다.

    KAI의 수리온 헬기 수주 실패는 지난해 9월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미국 보잉-스웨덴 사브 컨소시엄에 밀려 탈락한 지 3개월만이다. 보잉 등 민항기 기체 구조물 수출 증가 덕분에 흑자를 거뒀지만, 군수분야에서 해외 수주가 잇따라 실패하면서 시장 확대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세계 방위산업 시장에서 ‘틈새시장’으로 평가받는 동남아에서조차 미국과 유럽, 중국, 러시아 방산업체에 밀려난다면 한국 방위산업은 내수만 충족하는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해병대 상육기동헬기 마린온이 2017년 12월 27일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가격과 신뢰성에 ‘덜미’, 수출 험로 예상

    수리온 헬기의 필리핀 수출 가능성은 지난해부터 군 안팎에서 제기되어 왔다. 필리핀 정부는 2017년 말 캐나다 업체와 2억3300만달러(약 2525억원) 규모의 Bell-412 헬기 16대 구매계약을 체결했으나 캐나다가 필리핀의 인권문제를 제기하자 지난해 초 계약을 파기하고 대안 모색에 나섰다. 

    이에 우리 정부는 수리온 필리핀 수출에 적극 나섰다. 군 당국은 지난해 6월 방한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위해 서울 용산 국방부 연병장에 수리온 1대를 주기, 두테르테 대통령이 부조종석에 앉아 약 10분간 수리온의 성능과 작동법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를 제공했다. 방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델핀 로렌자나 국방장관에게 수리온 헬기 구매 검토를 지시했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이 3일 교육훈련현장 방문을 위해 수리온 헬기에서 내리고 있다. 
    육군 제공 

     

    필리핀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수리온의 첫 수출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됐다. 방산업계에서는 Be11-342 헬기보다 큰 헬기인 수리온 10~12대를 필리핀에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필리핀은 KAI로부터 FA-50PH 경공격기 12대를 도입했다. K-3 기관총을 비롯한 개인화기와 군용 트럭 등도 구매한 바 있어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미국 록히드마틴의 UH-60 헬기였다. 록히드마틴은 고정익 군용기만 생산하던 업체였으나 헬기 제작사인 미국 시콜스키를 인수, 헬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록히드마틴은 UH-60 헬기 16대를 싼 가격에 내놓는 ‘저가 공세’로 판을 흔들었다.

    1979년부터 미군에 도입된 UH-60은 2500대가 생산되어 미군과 한국군, 콜롬비아군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성능이 검증됐으며 수리온에 비해 수십배 많은 생산량을 갖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갖췄고, 그만큼 가격 인하가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일부 외신은 인건비가 미국보다 낮은 폴란드 소재 자회사에서 생산하는 S-70i(UH-60 계열)가 공급될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여기에 옵션을 제외하면 가격은 더 낮아진다.

    지난해 7월 발생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는 수리온의 신뢰성에 흠집을 남겼다. 마린온은 수리온을 개조한 헬기다. 정부와 KAI는 마린온 추락사고가 일부 부품 결함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추가 옵션도 제안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싸고 튼튼한 헬기를 구매하기를 원하는 필리핀의 수요를 꿰뚫어 본 록히드마틴의 승리였다. 군 소식통은 “수리온보다 더 크고 신뢰성과 성능이 우수하며, 가격도 낮은 UH-60이라면 수리온의 수출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리온이 경쟁기종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려는 록히드마틴의 의중이 드러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T-50 훈련기가 조성되고 있다.

    (KAI 제공)

     

    ◆가성비 좋은 무기만 살아남는다

    미 공군 APT 사업 T-50A 수주와 필리핀 수리온 수출 실패는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에 경고등을 울린, 위기의 전조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가격이다. 미 공군 APT 사업 당시 T-50의 대당 가격에 대해 해외 방산업계는 2500만달러로 평가했다. 유사시 제한적인 전투도 가능한 FA-50 경공격기로 개조할 수 있도록 개발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성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반면 보잉의 BTX 훈련기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저렴한 훈련기를 원하는 미 공군의 요구를 철저히 반영, 비용절감에 성공했다. 3D 프린팅 적용, F-16 랜딩기어 재활용, 전투사양 제외, 미 공군 정비 시스템 반영 등이 그것이다. 덕분에 미 공군이 예상한 197억달러의 절반인 92억달러에 사업을 수주할 수 있었다. 

     


     

     

     

    공군 FA-50 경공격기 편대가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공군 제공

    저렴한 가격 외에 우수한 성능과 품질도 필수다. BTX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 by Wire) 디지털 비행통제 시스템을 탑재, 고속 및 저속 비행 안전성을 높였다. 공간 배치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어 체형에 관계없이 조종사를 태울 수 있다. 성능개량을 위해 구성품 교체나 추가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필리핀 정부가 선택한 UH-60 헬기는 미군이 참가한 전쟁에서 성능이 검증됐으며 가격 인하 요소도 갖췄다.

    ‘저가의 우수한 성능을 갖춘 상품’이라는 원칙은 군수와 민수 양쪽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일(현지시각) 애플이 혁신없는 고가 전략으로 매출 부진을 겪는 가운데 중급(middle-tier) 휴대폰에 최고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장착한 삼성전자나 저가 스마트폰에 새로운 기술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중국 업체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군수 분야에서는 국산 K-9 자주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와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터키, 폴란드 등에 수출된 K-9의 정부 납품가는 20여년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1999년부터 우리 군에 1000여문이 배치되면서 효율화를 통해 생산 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수출가격이 독일산 자주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사거리도 40㎞에 달하는데다 기동성도 우수해 경쟁기종보다 성능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육군 K-9 자주포가 표적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육군 제공

    문제는 K-9과 같은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지상무기를 제외하면 국산 무기는 ‘성능도, 가격도 선뜻 구매하기에는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능개량도 지지부진하다. T-50 훈련기는 개발 이후 별다른 개량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방산업계에서는 미 공군 APT 사업에 제시됐던 T-50A에 준하는 성능개량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수리온 역시 비용절감과 함께 기술적 신뢰성 입증을 서두르지 않으면 중국, 러시아, 터키 등에 중저가 헬기 시장을 내줄 우려도 있다.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성능과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탈냉전 이후 군사기술은 첨단화되고 있으나 이를 선뜻 구매할 수 있는 국가는 줄어들고 있다. 무기에 탑재되는 전자장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무기가 ‘기계’가 아닌, ‘고가의 전자제품’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국방예산으로는 첨단 무기를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F-35A 스텔스 전투기가 개발됐지만 이보다 구형인 F-16의 수요가 여전한 것도 비용 문제 때문이다.

    글로벌 방산업체들은 ‘틈새시장’을 파고들면서 신흥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구축한 진입장벽을 뛰어넘으려면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국제 무기시장에 대한 접근부터 개별국가의 수요, 유연한 성능개량을 가능케 하는 열린 설계, 비용절감 등 추진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재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 방산업계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