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도 토너먼트 방식으로…세상에 없는 기술 찾는다
- 작성일2019/04/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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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9.04.17
현행 국내 R&D 시스템은 단기결과·산업화에 치중 도전·모험 주저하게 만들어
美 로봇챌린지만 하더라도 99% 실패 끝에 성공하는 식
획기적인 수혜 기대되지만 실패 위험 큰 과제 집중해야
車·로봇·첨단장비 등 5개분야에 100억 지원
(사진설명) 지난 12일 서울 역삼 호텔 아르누보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지상좌담회`에는 정부와 기업, 대학 등 각계 R&D 전문가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윤재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소장, 장웅성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 MD,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신경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부장, 김현철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융합정책관, 유석현 두산중공업 부사장. [김호영 기자]
정부가 기존 산업기술 연구개발(R&D) 틀에서 탈피하고 산업의 난제 해결에 도전하는 고난도 기술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알키미스트(Alchemist) 프로젝트'에 나선다. 기존 정부 R&D 프로젝트가 실패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성공 가능성에만 집착하는 과제 위주로 진행되다보니, 높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장되는 기술이 적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미 지난달 '그랜드 챌린지(Grand Challenge) 발굴위원회'를 출범시켜 산업 분야 난제 발굴을 시작했다. 도전적 R&D의 중요성과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의 성공 요건, 글로벌 기술 선도를 위해 정부 R&D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산학연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 국내 R&D 시스템의 한계점은.
▷신경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부장=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생산성 기반'에서 '창의성 기반'으로 바뀐 지 오래고,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단계가 '따라잡기'에서 '앞서가기'로 바뀐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우리가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창의적 혁신의 틀을 만들고자 해외의 모범적인 모델을 들여와 국내 R&D 문화와 제도를 선진화하려고 했지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윤재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소장=현재 국내 R&D 시스템은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실용화까지 이어지는 연계성이 부족하고 연구 결과 평가에만 집중하고 있다. R&D 시작 단계에서부터 단기적인 결과나 산업화를 강요함으로써 연구자가 도전하고 위험을 추구하기보다 피하게 만들고 있다.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추격형에서 벗어난 도전적 R&D의 요구는 우리나라 기술이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의 한계를 느낀 2000년대 초부터 줄곧 이어져 왔으나 여전히 도전을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로봇 챌린지(DRC)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로 우승하기까지 수많은 실패가 밑바탕이 됐다. 로봇 개발 과정은 99% 실패를 겪다가 마지막에 겨우 성공하는 것이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의 의미와 추진 방향은 무엇인가.
▷장웅성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 MD=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확산으로 디지털화, 플랫폼화, 데이터경제 등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산업 현장은 중국의 급부상으로 대부분 주력산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R&D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정부가 R&D의 키워드를 '도전' '속도' '축적'으로 정의하고 R&D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것이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적인 난제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 난제를 해결하기위한 과정에서 또는 그 결과물에서 우리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김현철 산업부 국장=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도전적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경쟁적 연구를 장려하는 토너먼트 R&D 방식도 도입하려 한다. 연구기관과 학계 중심의 초고난도 장기 과제를 중점 지원하고, 기존에 단기 성과 창출 위주의 중소 규모 지원 산업 기술 R&D 경향에서 벗어나 산업·시장을 뒤집을 만한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패를 용인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국가 전체적인 R&D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외에서 바라보는 산업계 난제는?
▷유석현 두산중공업 부사장=과학기술 분야 난제와 달리 산업계 난제는 정의가 어렵다. 동일한 산업계에서도 인력, 기술, 자본에 따라 인식하는 난제의 종류와 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도 파괴력을 유지하기 위한 난제의 키워드는 국가·사회 현안 해결, 미래산업 선도, 확장성과 융합성 등이 있으며 국방, 환경, 안전, 보건의료,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등이 대표적인 분야가 될 수 있다.
▷윤 소장=과학기술 선진국들은 파괴적 혁신 창출을 위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미국의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는 GPS, 인터넷, 드론, 무인자동차, 스텔스전투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조직이다. 다가올 기술적 위협을 대비하거나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획기적인 수혜가 기대되지만 실패의 위험 또한 큰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 DARPA를 모델로 미국 에너지부는 ARPA―E(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Energy)를 설립해 2009년부터 미국의 국가 에너지 시스템 혁신을 위한 에너지 기술 및 정책 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인 DARPA 프로젝트는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AI)'이다. AI의 의사 결정에 대한 신뢰도를 향상시켜 의료·법률·금융·국방 등 투명성 및 정확성이 필요한 분야에 활용하고자 4년 동안 7500만달러(약 800억원)의 예산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저출산 및 고령화, 대규모 자연재해 등 현재 일본에 닥친 많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괴적 혁신형 R&D 과제인 'ImPACT'를 추진 중이며 유럽도 파괴적 혁신 연구를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착수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나.
▷김 국장=올해 시범사업으로 자동차, 로봇, 첨단장비,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향상 등 5개 분야 산업의 난제를 해결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시범과제에 약 1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1단계 선행연구→2단계 본연구' 두 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자동차 등 5개 분야에서 과제를 1~2개씩 선정한다. 이후 5~10개 과제를 연구할 기관을 3개씩 선발하고 이들 기관에 2년간 3억~5억원의 선행연구 자금을 지원한다. 2년이 지난 뒤에는 2단계로 돌입한다. 1단계 각 분야 3개 기관 중 연구성과가 가장 뛰어난 1곳만 토너먼트 방식으로 추린다. 2단계 돌입 평가 과정과 결과는 외부에 모두 공개한다. 선정된 기관에는 1년에 50억원씩 5년간 250억원을 지원한다. 2단계부터는 등급을 부여하거나 목표 달성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연구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산업계 난제 선정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총 60인의 산학연 민간전문가가 포함된 '그랜드챌린지(Grand-Challenge) 발굴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요조사 등을 거쳐 올 상반기 중 산업계 난제를 최종 도출한다. 산업부는 과기부와 공동으로 과학계, 산업계의 난제에 도전하는 6000억원 규모의 중장기 사업을 기획 중이며, 상반기 중 예비타당성 조사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