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무기기술 상당수 포함… 경쟁사·제3국 유입에 촉각
- 작성일2020/05/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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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20.05.06
ADD ‘대규모 기밀자료 유출’ 파장 / ADD, 다양한 국가와 기술협력 협의로 / 유수 방산연구기관 등서 기술 전수받아 / 사실 드러날 땐 기술협력 지속 어려워 / 전직 연구원 69명 기밀 기술자료 빼내 / 이 중 23명은 대규모 데이터도 빼돌려 / 우주항공 기술 등 150만건 이상 유출돼 / 美, 가장 민감… 잠수함 등 수출 큰 타격 / 일각 “예견된 사고”… UAE와 연계설도 / 당국 “개인적 일탈” 파장 최소화에 주력 / 전문가 “연구·개발, 민간주도 전환해야”
◆누가 얼마나 유출했나… 피해 규모는
ADD는 국산무기 연구·개발을 주관하는 국방기술의 산실이다.
이런 ADD에 보관 중이던 무기개발 기밀자료 상당량이 유출됐다. 우주항공기술, 전술무기, 함정, 잠수함 등 주요무기 개발에 사용되거나 앞으로 사용될 기술 전반에 거쳐 150만건 이상이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라는 게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국가정보원, 경찰 등에 따르면 ADD 전직 연구원 69명이 기밀 기술자료를 유출했고 그중 23명이 대규모 데이터를 빼돌렸다. 이들은 대부분 한화, LIG넥스원 등 국내 및 해외 주요 방산기업에 재취업한 상태이나 일부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칼리파대학(Khalifa Univercity) 내 부설연구소로 이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혼자서 68만건 이상의 무기개발 기밀자료를 유출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국내 한 대학 기술연구센터에서 근무 중인 상태다. 지난 1일 경찰은 이 연구센터를 압수수색했다.
◆기술협력 통한 공생에 차질
ADD는 다양한 국가들과 기술협력 협의체를 운영한다. 거의 모든 기술 선진국 및 유수의 외국업체들이 망라돼 있다.
협력 범위도 재래식무기 핵심기술과 무인전투체계 기술, 민군 겸용 기술, 에너지, 정보통신(ICT) 분야까지 다양하다. 공동기술 개발이란 이름 아래 협력하는 과제만도 수십~수백건에 달한다.
모두 ADD라는 기관의 공신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ADD 전직 연구원들의 기밀 유출은 ADD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해외 연구기관과 업체들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부의 배신행위나 다름없다.
기밀자료를 빼간 ADD 연구원들이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에 취업하거나 제3국으로 기밀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커진다면 ADD와 외국업체들과의 공생관계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연구기술 개발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외국 방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ADD를 믿고 공유한 기술이 잠재적 경쟁자나 적성국에 흘러들어 간다면 앞으로 어떤 국가나 기업이 ADD와 손을 잡겠냐”면서 “이번 사건은 ADD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국가브랜드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ADD에 대한 외국 방산업체의 불신이 커지면서 공동연구 개발이 줄어들면 ADD가 주도해 국내 개발 방식으로 한국군에 전달되는 무기의 수도 자연 감소할 것”이라며 “향후 한국 정부의 무기도입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압박과 해외수출에도 타격 예상
현재 해외 방산업체들은 사태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ADD와 협업한 어떤 기술이 어느 기업으로 유출됐는지와 수사 결과 예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ADD 기밀 유출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역시 미국이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 이런 사건을 그냥 넘어갈 리는 만무하다. 반미감정을 우려, 외교적 갈등 문제로 확산하지 않도록 물밑에서 처리하되 한국에 대한 기술이전과 무기판매, 한국무기의 해외수출 견제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다는 얘기다.
우선 한국형전투기(KF-X), 잠수함, 각종 유도무기의 수출 타격이 예상된다. KF-X에 미국산 무장을 장착하려면 체계통합 기술과 미사일 관련 자료 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수출승인이 필요하다. 미국 측이 기술 유출 위험 등을 내세워 승인을 거부하면 KF-X 개발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의 미국산 무기 도입 및 운용도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 군의 정비 범위를 축소하거나 국내 정비를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교범 및 훈련체계의 인도나 운용 조건을 까다롭게 할 여지도 높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비롯한 한·미 외교 및 국방 관련 협상과 미국산 무기구매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약화될 우려 또한 작지 않다. 전직 ADD 관계자는 “한국산 무기 수출 때 기술 유출 이력이나 꼬리표가 따라붙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면서 “이는 그만큼 해외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UAE와의 연관설은
UAE 칼리파대학. 이 대학은 2018년 4월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대거 방문했던 곳이다. 방산전시회가 열린 시기도 아니었는데 이례적으로 남세규 ADD 소장을 비롯한 엘리트 연구원 9명이 동행했다. 당시 UAE 정부가 UAE판 ADD 설립을 추진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UAE판 ADD 설립을 위한 한·UAE 공조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무산됐다.
송영무 전 장관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UAE와의 협력은 원전 수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UAE가 열정이 많았다. 하지만 민간차원의 연구개발을 위주로 하는 UAE의 미국식 시스템은 우리와 맞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ADD와 같은 국가 주도 연구개발연구소의 설립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했다”고 무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대신 도와줄 테니 ADD 퇴직 연구원들을 데려다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송 장관 UAE 방문과 제안 이후 ADD 퇴직 연구원들은 UAE 칼리파대학으로 몰려갔다. ADD 재직시절의 10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 아래 잠자던 UAE판 ADD 설립 계획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기밀자료 유출 혐의를 받는 ADD 퇴직 연구원의 UAE행이 확인되면서다.
UAE 칼리파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ADD 퇴직 연구원은 모두 6명 정도다. 이들 중 3~4명은 국산 2.75인치 로켓의 탐색기(seeker) 개발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탐색기는 미사일, 로켓의 눈과 같은 장치로 유도무기의 핵심기술로 꼽힌다. UAE는 현재 유도무기의 자립기술 기반 확보에 주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UAE판 ADD 개설이 불가능해지자 플랜B가 가동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럽 방산업체들 역시 불가능이 현실로 바뀌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의 ‘기획설’이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ADD시스템은 구닥다리다. 고객 만족이 불가능한 조직체계다. 과거에는 국가 주도 연구개발이 효율적이었지만 지금은 민간의 연구개발 비용이 더 높다. 국가가 감당하기 벅차다”면서 “이런 점 등을 모두 살펴본 UAE가 UAE판 ADD를 설립하는 대신 ADD 퇴직 연구원을 채용해 연구개발 기반을 닦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UAE가 합리적인 결정을 한 것이며 우리도 권장했다”고 밝혔다. 여 전 실장은 “다만 연구원들의 기밀자료 유출 여부는 수사해 봐야 할 문제이지만 기밀자료 유출을 증명해 군사기밀누설죄로 처벌하기가 지난(至難)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재발 방지 대책은 없나… 정부 주도 무기개발 시스템 바꿔야
최근 전 세계 방위산업은 정부 주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도 록히드마틴이나 보잉사 같은 대형 방산업체가 연구·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시대’ 정부 주도 연구·개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구도가 군사기술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직 ADD 관계자는 “ADD에 의존해 사업을 추진하는 방산업체는 군사기밀 확보에 혈안이다. 자연 ADD 퇴직 연구원은 군사 정보를 갈망하는 방산업체 채용 시 영순위”라면서 “방위산업 연구·개발 구도를 민간 주도로 전환해 방위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기밀 누설 위험을 낮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