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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빠진 한국 방위산업' 네덜란드에서 찾은 성공전략은
    • 작성일2019/08/26 09:38
    • 조회 355

    [중앙일보]

    2019. 08. 25.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립전시장(ADNEC)에서 열린 방산전시회
    'IDEX(International Defence Exhibition and Conference) 2019' 개막식에 참석한 뒤 한국관을 찾았다.
    사진 연합뉴스

    지속가능 방위산업 모델 필요
    완제품 생산만 하겠다는 한국
    내수 벗어난 해외시장 찾아야
    소재·부품 수출로 활로 개척

     

    1970년대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시작된 우리나라 방위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나라는 소총과 견인포로 시작하여 이제는 장갑차량, 함정, 항공기, 그리고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무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인 방위산업 수출국으로 도약하여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방위산업 지정업체들의 매출 감소, 제조업 평균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률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우리 군의 수요를 기반으로 커왔다. 그러나,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력 감축, 그에 따른 장비 도입 규모 축소 등 내부적 어려움과 함께, 수출도 기존 선진국 외에 이스라엘과 중국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무기의 주요 수출국이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무기가 늘어나면서 우리 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완제품 위주 사업에서 탈피해야 

     

     

    e-나라지표의 방산업체 영업이익률 현황 사진=e-나라지표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완제품 위주였다. 완제품 위주 사업에 매달리다가 사업이 종료되면 사업을 주도하던 업체 외에도 그 사업에 부품을 공급하던 수많은 중소기업도 판로가 없어져 결국 방위산업에서 철수하거나, 최악의 경우 폐업에 이른다.

     

    외국의 대표적 사례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이 야심 차게 개발한 F-2 전투기가 2011년 94번기를 마지막으로 종료 후 후속 개발이 진행되지 않자, 부품을 납품하던 많은 일본 중소기업들이 방위산업에서 철수했다. 일본 방위성이 2016년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72개 공급업체 가운데 52개가 사라졌다고 한다.

    공급사슬을 유지하던 중소기업들의 부재는 일본이 준비하고 있는 차기 전투기 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된다. 일본이 최근 미국에 F-35 파트너 국가 참여를 문의한 것도 F-35 전투기를 대량 도입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부품업체들을 일부라도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e-나라지표의 방산업체 가동률 현황 사진=e-나라지표

    이런 소식은 단지 외국의 사례로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로템이 제작을 책임진 K-2 흑표전차가 2차 생산분에서 파워팩 국산화 문제로 납품이 지연되면서 여기에 관련된 중소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런 문제는 수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완제품 위주 수출로 인해 부품과 소재 중심의 중소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정책적 협력이 강조된 새로운 롤 모델이 필요 

     

     

    일본의 F-2 전투기는 2011년 사업 종료후 대부분 공급업체가 사라졌다. 사진=미 공군

     

    우리나라는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새로운 롤 모델을 찾아왔다. 최근에는 국방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이스라엘의 ‘탈피오르’ 제도를 벤치마킹한 과학기술 전문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능력 있는 중소기업 발굴을 위한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델들은 중소 방산업체들의 어려움을 타파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스타트업 발굴에 이어 발전, 지원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즉, 정부, 업체 그리고 이들을 지원할 연구기관의 삼각축의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이런 방위산업 삼각축의 협력 모델은 네덜란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스타트업과 스케일업들이 네덜란드를 택하는 이유들 사진=startupdelta.org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경상남북도 정도에 불과하고, 인구도 1,700만 명 정도지만, 세계적인 규모의 교역량을 자랑한다. 네덜란드는 2017년 기준 세계 수출 5위, 명목상 GDP 기준 세계 17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유럽연합(EU) 무역에서 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출입을 모두 합하면 독일, 영국과 함께 3대 교역국에 포함될 정도로 많은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다. 

    네덜란드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튤립, 낙농, 운하, 풍차, 그리고 히딩크의 나라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카세트, CD, DVD, 블루레이를 발명한 필립스, 1950년대 무단변속기 CVT를 개발한 DAF, 2010년대 초반부터 애플에 지도를 공급하는 톰톰(TomTom)도 네덜란드 업체다. 그리고, 세계 반도체 장비 기업 시가총액 1위로 반도체 노광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ASML도 네덜란드 회사다.

     

     

    네덜란드 정부의 탑 섹터로 분류된 9가지 분야 자료=네덜란드 경제기후부

     

    네덜란드는 정부가 정한 9가지 선도산업을 일컫는 ‘탑 섹터(Top Sector)’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탑 섹터는 하이테크 시스템 및 재료(High Tech Systems & Materials), 생명과학 및 건강(Life Sciences & Health), 물류(Logistics), 혁신산업(Creative Industry), 화학(Chemistry), 농식품(Agri & Food), 수자원(Water), 에너지(Energy), 원예(Horticulture & Starting materials)가 있다.

    9가지 탑 섹터에서 부가가치 창출 1위는 480억 유로의 하이테크 시스템 및 재료 섹터이며, 방위산업이 여기에 속합니다. 네덜란드의 방위산업은 완제품을 제작하는 소수의 업체와 부품 등을 공급하는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업체는 많은 유럽과 미국계 업체의 공급 사슬에 포함되어 있다.

     

    자국 수요를 벗어난 네덜란드 방위산업 

     

    네덜란드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냉전 종식 후 대규모 군축을 단행했다. 2019년 국방비는 GDP 대비 1.3% 정도인 104억 유로이며, 전체 병력은 56,000명에 불과하다. 이런 규모의 군대만을 상대로는 방위산업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에 있는 방위산업 및 관련 업체는 650여 개에 이르며, 직접 고용인원도 25,000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R&D 인력이 8,000여 명에 이른다.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유지할 수 없는 규모다. 실제로 네덜란드 방위산업은 수출 중심이다.

     

     

    SIPRI의 2013~2017 세계 방위산업 수출국 순위, 네덜란드는 10위, 우리나라는 12위에 위치했다. 사진=sipri.org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14-18년까지 5년간 세계 방산분야 수출액 비중 보고서에서 네덜란드는 2.1%로 세계 10위를 차지했고,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1.8%로 11위에 올랐다. 2013-17년 자료에서는 네덜란드는 2.1%로 10위를, 우리나라는 1.2%로 12위를 차지했었다. 네덜란드의 수출에는 군축으로 생긴 전차나 전투기를 다른 나라에 매각한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수출에서 앞서고 있다.
     
    무기류 교역 반대 운동 단체인 CtW(www.stopwapenhandel.org)의 2018년 6월 데이터에 의하면, 2013~2017년 사이 네덜란드의 주요 방위산업 수출은 미국에 대한 F-35 전투기 부품, 인도네시아에 대한 호위함과 관련 부품, EU 국가에 대한 광학 부품 등이 있었다.


    방탄소재에서 의류와 아웃도어로 활용폭을 넓히고 있는 DSM 다이니마 사진=DSM 다이니마

     

    네덜란드의 방위산업 관련 업체는 2016년 기준으로 54.4%가 무기 및 탄약 관련 부품과 소재 관련 업체다. 그다음으로 기타 군수품 관련 부품과 소재 관련 업체가 9.5%, 전투기 관련 업체 9.5%, 전차 관련 업체 9.0%, 장갑차량 관련 업체 4.3%, 군용 전자장비 관련 업체 4.0% 순이다.

     

    정부, 업계, 연구기관의 협력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추구 

     

    네덜란드 산업이 성장하는 이유로 협력 모델을 들 수 있다. 이 협력의 틀 안에 정부, 기업, 그리고 연구소 및 대학이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성장시킬 필요가 있는 국방 분야를 결정한다.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업, 연구소 및 대학의 삼각축이 협의를 통해서 결정한다. 하지만 주로 기업과 연구중심 기관의 합의를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2013~2017 네덜란드의 10대 무기 수출 허가 종류, 수출국 그리고 금액 사진=stopwapenhandel.org


    업체의 입장에서 정부와 협의하는 주체로 네덜란드 방산협회(NIDV)가 있다. NIDV는 1984년 국방부, 외교부, 경제부 등 세 개 부처 간 협의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운영은 회원 업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 입장에서 방위산업에 대한 고민과 전략은 방위산업전략(Defence Industry Strategy, DIS) 문서를 통해 공개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네덜란드 국가안보에 필요한 기반을 설명하고 있다. 문서는 2007년 처음 만들어졌고, 2013년에 개정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문서 서문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을 반드시 네덜란드 안에서 생산할 수는 없다. 이 경우, 우리는 네덜란드 기업과 지식기관들이 생산에 관여하도록 하고, 네덜란드 산업이 일류 지식과 능력에 접근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또한 모든 국가의 공평한 경쟁의 장으로 보다 개방적인 유럽 방위시장을 옹호함으로써 네덜란드 방위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지막 한 축인 연구소와 대학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 연구소로는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TNO), 네덜란드 항공우주센터(NLR), 네덜란드 해양연구소(MARIN)가 대표적이다. NLR은 세계적인 항공우주 연구 용역을 수행하여 네덜란드의 서비스 수지에도 기여하고 있다.


    정부, 기업, 그리고 연구소 및 대학의 삼각축을 이룬 네덜란드 산업 협력 모델 자료=네덜란드 경제기후부

    네덜란드의 대학도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중심대학 13개, 실제 직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배우는 실무중심대학 39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연구중심대학이 네덜란드 지식기반 커뮤니티의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열린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 기업들은 대학에 연구를 의뢰하고, 특정 분야의 연구와 인력이 필요하면 연구비도 지원한다. 직면한 문제를 공개하여 대학 등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추구한다. 이런 방식으로 필립스. ASML, DSM 등 여러 기업이 꾸준한 기술 개발과 공정 혁신으로 기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중소기업 간 협력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ASML은 필립스의 한 부서였다가 1984년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필립스의 도움을 지속해서 받았고, 현재는 다양한 기업, 연구소 등과 협력하여 업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비즈니스 친화적 마인드가 중요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책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키워내고 있다. 네덜란드는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유럽에서 비즈니스하기 좋은 나라 3위에 올랐다.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를 네덜란드에 두게 하고 있다.

     

     

    네덜란드 하이테크 기업 생태계의 한 예인 필립스과 거시서 파생된 기업들 자료=네덜란드 경제기후부

     

    네덜란드는 스타트업 육성과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경영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2014년 98개 기업이 패스트 그로잉(fast growing) 기업으로 성장했고, 2016년에는 331개로 증가했다고 한다. 패스트 그로잉 기업이란 직원 수 최소 10명, 연간 매출액 5백만 유로, 최근 3년 연평균 수익률 20% 이상인 기업을 말한다. 네덜란드는 외국인에게도 창업의 문호를 열어놓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4년 스타트업네덜란드(StartupNL) 의제를 설정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연간 1,250만 유로씩 6년간 7,50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민관협력사업으로 설립된 스타트업델타(StartupDelta)와 협력하여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네덜란드 산업 전반에 걸친 성장을 이끌고 있다.

    단순 수출이 아닌 협력을 통한 상생 모색 

     

    이런 정부의 지원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네덜란드 방위산업체들은 해외 진출을 단순한 수출로 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파는 것이 완제품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현지 업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위산업도 수출하면서 현지의 기술 이전 요구를 받으면서 현지와 협력의 중요성을 경험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혁신 허브들 사진=startupfesteurope.com

     

    이미 네덜란드 방위산업체들은 우리나라와도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야간투시경 핵심 장비를 제작하는 포토니스는 우리 군의 야간투시경용 핵심 부품을 납품했고, 방탄소재를 생산하는 DSM 다이니마는 기본 소재를 납품하고 국내 업체가 가공하여 군에 납품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 아웃도어 업체에도 소재를 납품하고 있다.

     

     

    포토니스의 다섯가지 사업분야 사진=포토니스

     

    하지만 네덜란드 방위사업체들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사업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포토니스는 야시경용 광증폭기 외에 디지털 야시장비와 과학용 탐지 장비 등을 개발했다. DSM 다이니마는 방탄복 외 선박용 로프나 의류 등 새로운 응용 분야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또 다른 협력의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마침 네덜란드의 방위산업을 가까이 경험할 기회가 열릴 예정이다. 네덜란드는 10월 15일부터 서울공항에서 열릴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9)에 국가관을 구성할 예정이다. 네덜란드 국가관에는 포토니스와 DSM 다이니마 등 8개 업체와 TNO, NLR, DMO와 같은 연구소와 정부 기관이 참가하고 관련 세미나도 열릴 예정이다.

    우리나라 방위산업, 특히 중소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네덜란드와 협력을 통해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자.

     

    - 최현호 밀리돔 대표·군사 칼럼니스트 -

    https://news.joins.com/article/23561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