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빠진 한국 방위산업' 네덜란드에서 찾은 성공전략은
- 작성일2019/08/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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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9. 08. 25.
완제품 생산만 하겠다는 한국
내수 벗어난 해외시장 찾아야
소재·부품 수출로 활로 개척
1970년대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시작된 우리나라 방위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나라는 소총과 견인포로 시작하여 이제는 장갑차량, 함정, 항공기, 그리고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무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인 방위산업 수출국으로 도약하여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방위산업 지정업체들의 매출 감소, 제조업 평균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률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우리 군의 수요를 기반으로 커왔다. 그러나, 인구 절벽으로 인한 병력 감축, 그에 따른 장비 도입 규모 축소 등 내부적 어려움과 함께, 수출도 기존 선진국 외에 이스라엘과 중국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무기의 주요 수출국이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무기가 늘어나면서 우리 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완제품 위주 사업에서 탈피해야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완제품 위주였다. 완제품 위주 사업에 매달리다가 사업이 종료되면 사업을 주도하던 업체 외에도 그 사업에 부품을 공급하던 수많은 중소기업도 판로가 없어져 결국 방위산업에서 철수하거나, 최악의 경우 폐업에 이른다.
이런 문제는 수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완제품 위주 수출로 인해 부품과 소재 중심의 중소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정책적 협력이 강조된 새로운 롤 모델이 필요
우리나라는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새로운 롤 모델을 찾아왔다. 최근에는 국방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이스라엘의 ‘탈피오르’ 제도를 벤치마킹한 과학기술 전문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능력 있는 중소기업 발굴을 위한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델들은 중소 방산업체들의 어려움을 타파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스타트업 발굴에 이어 발전, 지원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즉, 정부, 업체 그리고 이들을 지원할 연구기관의 삼각축의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이런 방위산업 삼각축의 협력 모델은 네덜란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튤립, 낙농, 운하, 풍차, 그리고 히딩크의 나라 정도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카세트, CD, DVD, 블루레이를 발명한 필립스, 1950년대 무단변속기 CVT를 개발한 DAF, 2010년대 초반부터 애플에 지도를 공급하는 톰톰(TomTom)도 네덜란드 업체다. 그리고, 세계 반도체 장비 기업 시가총액 1위로 반도체 노광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ASML도 네덜란드 회사다.
9가지 탑 섹터에서 부가가치 창출 1위는 480억 유로의 하이테크 시스템 및 재료 섹터이며, 방위산업이 여기에 속합니다. 네덜란드의 방위산업은 완제품을 제작하는 소수의 업체와 부품 등을 공급하는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업체는 많은 유럽과 미국계 업체의 공급 사슬에 포함되어 있다.
자국 수요를 벗어난 네덜란드 방위산업
네덜란드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냉전 종식 후 대규모 군축을 단행했다. 2019년 국방비는 GDP 대비 1.3% 정도인 104억 유로이며, 전체 병력은 56,000명에 불과하다. 이런 규모의 군대만을 상대로는 방위산업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에 있는 방위산업 및 관련 업체는 650여 개에 이르며, 직접 고용인원도 25,000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R&D 인력이 8,000여 명에 이른다.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유지할 수 없는 규모다. 실제로 네덜란드 방위산업은 수출 중심이다.
무기류 교역 반대 운동 단체인 CtW(www.stopwapenhandel.org)의 2018년 6월 데이터에 의하면, 2013~2017년 사이 네덜란드의 주요 방위산업 수출은 미국에 대한 F-35 전투기 부품, 인도네시아에 대한 호위함과 관련 부품, EU 국가에 대한 광학 부품 등이 있었다.
정부, 업계, 연구기관의 협력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추구
네덜란드 산업이 성장하는 이유로 협력 모델을 들 수 있다. 이 협력의 틀 안에 정부, 기업, 그리고 연구소 및 대학이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성장시킬 필요가 있는 국방 분야를 결정한다.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업, 연구소 및 대학의 삼각축이 협의를 통해서 결정한다. 하지만 주로 기업과 연구중심 기관의 합의를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업체의 입장에서 정부와 협의하는 주체로 네덜란드 방산협회(NIDV)가 있다. NIDV는 1984년 국방부, 외교부, 경제부 등 세 개 부처 간 협의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운영은 회원 업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 입장에서 방위산업에 대한 고민과 전략은 방위산업전략(Defence Industry Strategy, DIS) 문서를 통해 공개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네덜란드 국가안보에 필요한 기반을 설명하고 있다. 문서는 2007년 처음 만들어졌고, 2013년에 개정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마지막 한 축인 연구소와 대학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문 연구소로는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TNO), 네덜란드 항공우주센터(NLR), 네덜란드 해양연구소(MARIN)가 대표적이다. NLR은 세계적인 항공우주 연구 용역을 수행하여 네덜란드의 서비스 수지에도 기여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대학도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중심대학 13개, 실제 직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배우는 실무중심대학 39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연구중심대학이 네덜란드 지식기반 커뮤니티의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열린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네덜란드 기업들은 대학에 연구를 의뢰하고, 특정 분야의 연구와 인력이 필요하면 연구비도 지원한다. 직면한 문제를 공개하여 대학 등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추구한다. 이런 방식으로 필립스. ASML, DSM 등 여러 기업이 꾸준한 기술 개발과 공정 혁신으로 기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중소기업 간 협력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ASML은 필립스의 한 부서였다가 1984년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필립스의 도움을 지속해서 받았고, 현재는 다양한 기업, 연구소 등과 협력하여 업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비즈니스 친화적 마인드가 중요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책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키워내고 있다. 네덜란드는 2017년 포브스가 선정한 유럽에서 비즈니스하기 좋은 나라 3위에 올랐다.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를 네덜란드에 두게 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4년 스타트업네덜란드(StartupNL) 의제를 설정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연간 1,250만 유로씩 6년간 7,50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민관협력사업으로 설립된 스타트업델타(StartupDelta)와 협력하여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네덜란드 산업 전반에 걸친 성장을 이끌고 있다.
단순 수출이 아닌 협력을 통한 상생 모색
이런 정부의 지원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네덜란드 방위산업체들은 해외 진출을 단순한 수출로 보지 않는다. 자신들이 파는 것이 완제품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 현지 업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위산업도 수출하면서 현지의 기술 이전 요구를 받으면서 현지와 협력의 중요성을 경험하고 있다.
마침 네덜란드의 방위산업을 가까이 경험할 기회가 열릴 예정이다. 네덜란드는 10월 15일부터 서울공항에서 열릴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9)에 국가관을 구성할 예정이다. 네덜란드 국가관에는 포토니스와 DSM 다이니마 등 8개 업체와 TNO, NLR, DMO와 같은 연구소와 정부 기관이 참가하고 관련 세미나도 열릴 예정이다.
우리나라 방위산업, 특히 중소기업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네덜란드와 협력을 통해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자.
- 최현호 밀리돔 대표·군사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