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홍 방위사업청장 "국방비 매년 급증해도 방산업체에 가는 돈 줄어…이런 구조 바꿔야"
- 작성일2019/06/1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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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2019.06.17.
방위사업청은 한국형 ‘국방 획득’의 정점에 있는 기관이다. 각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대신 사주는 독점형 구매 대행기관이다. 방산 비리를 차단하자는 차원에서 방위사업법에 근거해 2006년 설립됐다. 1년 예산만 약 19조원에 달한다. 국방예산의 41%가량이 방사청을 통해 집행된다. 군이 직접 무기와 군수품을 주문하고, 기초 연구개발(R&D)을 주도하는 미국과는 다른 구조다. 주인이 직접 하냐, 대리인을 두느냐의 차이다. 대리인을 두던 영국은 2017년 ‘주인 체제’로 바꿨다.
설립 13년차인 방사청의 역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논란이 일고 있다. 미래전(戰)을 준비하려면 무기 구매와 개발에 빠른 의사 결정이 필요한데 현재 국방 획득 체계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돈을 가진 곳(방사청)과 수요자(각 군)의 간극이 크다보니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급변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군에선 R&D 역시 국방과학연구소(ADD)라는 별도 기관이 맡고 있다.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취임한 왕정홍 방사청장은 대리인 문제를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 방위산업이)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방사청이 하는 모든 사업은 7~8년 전 시작된 사업들이고, 새로운 무기는 이제 시작해봐야 5~6년 뒤에 가시화한다”는 것이다. 왕 청장은 “공정함과 속도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다.
왕정홍 방위사업청장은 지난 1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민과 군이 미래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신형무기 시험센터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왕 청장이 T-50 고등훈련기 모형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방위산업의 ‘속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현행 무기 획득 체계로는 기술 변화를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민간 기술을 약간만 변형하면 군에서 바로 쓸 수 있고, 기존 무기 중에서도 기능 하나만 바꾸면 전체 성능이 좋아질 것 같은 게 있습니다. 근데 이걸 못 하고 있습니다.”
▶ 왜 그런가요.
“무기를 구매하고 개발하는 절차가 너무 길고 험난합니다. 감사원에서 30년 정도 일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눈에 보이더군요. 뭘 하나 고치려고 해도 거쳐야 할 위원회만 수십 개입니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다 보니 함부로 바꾸지 못하게 해놓은 거죠.”
▶ 계속 이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역설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방위력 개선 사업비는 매년 늘고 있고, 현 정부 들어서도 엄청 증액됐어요. 그런데 국내 방산업체에 돌아가는 돈이 늘었느냐 하면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글로벌 호크나 F-35 전투기 같은 값비싼 무기를 해외에서 많이 구매하면 (국내 방산업체들이 생산하는) 탱크, 박격포 같은 재래식 무기 구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군요.
“제도를 개선해야죠.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국방위원회를 거쳤습니다. 관심이 아주 많아요. 늘어난 국방예산이 민간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물꼬를 터줘야 합니다. 곧 결과가 나올 테니 한번 지켜봐주세요.”
▶ 민간에선 실질적인 체감을 원합니다.
“어제까지 하던 걸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신개념 기술시범(ACTD) 사업만 해도 장애물이 많아요. 민간에서 국방기초연구를 먼저 제안하면 방사청이 수용하는 방식인데 정작 군에서 마뜩잖아 합니다.”
▶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민간 업체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군이 성능을 입증해주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특히 수출을 하려면 필수예요. 그런데 시험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비용을 민간이 댄다고 해도 만일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얘기로 들어가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 3군 합동연구소 설립 얘기도 나옵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디어가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방위산업진흥회 차원에서 신기술 전용 시험센터를 세우는 겁니다. (재원을 둘러싼 논란은 있겠지만) 기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에요.”
▶ 수출에도 많이 신경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사청의 핵심 임무 중 하나가 방위산업 진흥이에요. 수출길을 넓혀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수출을 위한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였고, 저를 비롯해 방사청 임직원들이 업체 사람들과 같이 해외에 나가서 세일즈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성사된 1조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잠수함 수출사업은 방사청을 비롯해 해외 공관, 수출입은행 등 범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입니다.”
▶ 고비용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
“맞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A그룹 계열사 대표가 한 말입니다. 여러 계열사에서 일했는데 유독 방산 계열사만 성장이 정체돼 있더라는 거예요. 다른 계열사들은 몇십 배 성장했는데 말이죠. 이유를 살펴보니 비용이 들어간 만큼만 보상하는 방위산업만의 독특한 원가 산정 구조 탓이라고 하더군요.”
▶ 효율성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구조네요.
“생산성을 높이거나 효율적으로 바꾸면 원가가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의 결과를 회사가 아니라 현 구조에선 방사청이 가져갑니다. 45년째 이렇게 하고 있어요.”
▶ 기업으로선 불합리한 방식 아닌가요.
“방사청에서 원가 계산하는 데만 매달리는 직원(총원 1515명)이 110명이에요. 이스라엘에선 같은 일을 단 7명이 합니다. 원가 계산이 아니라 효율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 방산경영개선단도 신설했습니다.
“오랫동안 손도 못 댄 걸 한번 바꿔보려는 겁니다. 큰 골격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민간 업체들도 참여하도록 문을 열어줬습니다. 연구용역도 줬고요.”
▶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요.
“원청, 하청, 재하청 등 업체별로 이해관계가 달라서 딱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근로자들로서도 지금까지 편하게 월급받고 일해왔는데 왜 바꾸려고 하느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왕 손보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계법인과도 협의 중입니다. 모든 방산업체가 동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 방사청의 복지부동에 대한 지적도 있는데요.
“감사원에 있다 이곳에 와서 보니 풍토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더군요. 취임하고 얼마 안 돼서 8000억원 규모의 계약이 성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결재가 안 올라와서 알아보니 전결로 끝냈다는 거예요. 청장은 사실상 할 일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잖아요. (책임을 직원들이 지는 구조이니) 직원들이 소극적일 수밖에요.”
▶ 어떻게 고치고 있나요.
“웬만한 계약은 모두 제 결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청장이 책임질 테니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죠. 수천억원짜리 계약조차 몇 페이지짜리 보고서로 끝내던 관행도 없앴어요.”
▶ 방산 비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여전합니다.
“감사라는 게 사업이 끝나고 이뤄집니다. 당시 책임자가 보고서를 아주 꼼꼼하게 써 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후임자가 감사원 등에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훈련을 시키는 과정이고, 정상화되면 다시 자율로 되돌려 놓을 겁니다.”
▶ 최근 중국이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부도 면밀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이집트 방산전시회에 참석했는데 중국의 강세가 뚜렷하더군요. 중국 최대 방산업체인 노린코(NORINCO) 등 28개 업체가 참가했어요. 가격 경쟁력에다 기술이전 조건까지 앞세워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미·중 갈등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이집트만 해도 중동·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예요. 각국이 방산 세일즈를 펼치는 곳이죠. 중국이 이들 신흥국과 군사적·경제적 협력관계를 꾸준히 구축해가고 있는 걸 서방 국가들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방산정책은 미·중 갈등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합니다. 외교·안보 문제와 깊이 관련돼 있어 더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 다른 방산 선진국들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초격차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무인자율 전투기를 개발하는 등 다른 국가들과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주력합니다. 유럽 역시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가 우리보다 기술력이 앞서 있는 데다 힘을 보태 유럽연합(EU)권 공동 개발도 수행 중입니다. 일본도 해양전력 분야에서 영역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을 할 때가 아닙니다.”
- 박동휘/임락근 기자 -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61635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