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KF-X’ 사업…조급증을 버려라
- 작성일2019/03/2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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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19.03.24
일본 전투기 개발 역사를 통해 본 논쟁
KF-X 오는 9월 80% 이상 형상 설계 완료
기술 개발 조급증…‘장비 구입’ 극한 주장까지
수십년간 실패해온 일본도 예산 논란 직면
그러나 레이더·엔진·스텔스 기술 자체 개발
▲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소재 록히드마틴 생산라인에서 F-35를 제조하는 모습. 우리 정부는 5세대 전투기 F-35A와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 제공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이 지난 18일 2021년 ‘시제기’ 생산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구체적인 사업 일정표가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시제기는 항공기를 대량 생산하기 전에 원형을 만들어 성능을 시험하는 기체를 말합니다.
KF-X의 설계는 현재 15% 가량 진행됐고 오는 9월이면 80% 이상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체 개발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실물 크기의 모형을 제작해 오는 10월 열리는 서울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ADEX)에서 공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한편에선 우려도 많습니다. 인도네시아가 공동개발국으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독자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될지 우려하는 시각입니다. 벌써부터 해외에서 첨단 장비를 사들여 조립하는 게 경제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더 낫지 않느냐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 “4.5세대 전투기 개발 의미있나” 커지는 잡음
엄밀히 따지자면 KF-X는 4.5세대 전투기로, 개발을 완료해도 이미 실전에 투입된 첨단 전투기인 미국의 ‘F-22’, ‘F-35’, 러시아의 ‘Su-57’ 등 5세대 전투기 성능엔 미치지 못 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기계식 4세대 전투기와 스텔스기로 개발하는 5세대 전투기의 중간쯤 되는 성능을 목표로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일각에선 “미국이 이미 6세대 무인전투기 개발에 나선 마당에 4.5세대 전투기 개발에 집중하면 너무 시대에 뒤쳐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 사진은 한국형 전투기(KF-X) 상부 측면 기본설계 형상 모습. 방위사업청 제공
이런 우려를 제기하는 분들께 일본의 사례를 전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일본은 F-15의 자국 면허생산 버전인 ‘F-15J’와 미국과 공동개발한 ‘F-2’ 등을 주력 기종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30년 F-2 퇴역에 대비해 야심차게 ‘F-3’를 개발해왔습니다.
작년엔 10조~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개발 비용 때문에 사업을 포기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언론 보도도 나왔습니다. 일본 방위성이 “결정된 바 없다. 미국 등과 공동개발도 고려하고 있다”고 해명하긴 했지만 일본 내부는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도 충격파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표면적인 논란으로 일본이 그동안 기울인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전투기 생산 과정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한 예로 F-15J의 생산에는 일본 방위산업체 1100여곳이 참가했고 생산단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정부가 미국의 동급 ‘F-15C/D’ 판매 가격의 3배에 이르는 높은 비용을 부담할 정도였습니다. 완제품에 가까운 형태로 수입해 단순 조립만 해도 되는데, 일본 정부는 묵묵히 지원을 이어갔습니다.
● 일본, 예산 투입 논란에도 기술 개발 지속
일본은 또 F-35A 42대를 미국에서 23조 8000억원에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40대를 도입하는 데 들이는 비용인 7조 4000억원의 3배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4대만 완제품으로 도입하고 나머지 38대는 미쓰비시 중공업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계약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쓰비시 중공업은 F-3 개발을 맡은 방산업체입니다. 아시아 지역의 정비창을 독점하고 정비 비용을 줄인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첨단기술 확보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일본은 2016년 스텔스기 생산을 위해 기술을 시험하는 실증기 ‘X-2’를 공개했습니다. 실험 수준이긴 하지만 일본 방위장비청은 “스텔스 기술을 확보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개발 당국은 F-22 등 고성능 전투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엔진 1개당 최대 15t의 추력을 확보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성능을 높이는 ‘애프터 버너’ 기능을 사용했을 때 엔진 추력이고, 실제 추력은 11t이지만 자체 기술로 전투기 엔진을 개발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입니다.
▲ 일본이 개발한 스텔스 기술실증기 X-2. 막대한 예산 문제로 사업 추진에 난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엔진, 스텔스 기술 등 차세대 항공기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방위성 제공
일본은 첨단 전투기에 꼭 필요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기술을 이미 1990년대에 개발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전투기용으로 상용화된 AESA 레이더는 일본의 주력전투기 F-2에 장착됐습니다. AESA 레이더는 일반 기계식 레이더보다 탐지 거리가 긴 것은 물론 여러 목표를 한꺼번에 포착할 수 있고 탐색, 전자전, 무기 유도 등 여러 기능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어 첨단 항공기에 필수적인 장비로 꼽힙니다.
작년에는 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 방위장비청은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개최한 ‘국제항공우주전’에서 ‘질화갈륨’(GaN)을 사용하는 신형 AESA 레이더를 공개했습니다. 이 기술은 탐지거리가 1000㎞를 넘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최신 육상레이더 ‘LMSSR’에도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우리가 ‘막대한 예산과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고도 F-3 개발 사업이 좌초됐다’고 비판하기엔 남긴 족적이 너무 뚜렷합니다. 너무 비효율적으로, 고집스럽게 항공기 개발을 시도한 일본의 사례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겁니다.
● KF-X는 이제 ‘걸음마’ 단계…조급증 버려야
KF-X에는 8조 80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됩니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이제 5년차를 맞았습니다. 2026년 6월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채찍질하는 것은 옳지만, 사업 자체를 엎거나 궤도를 완전히 수정해야 한다는 극한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2017년 10월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SEoul ADEX) 언론 사전 공개 행사에서 미국 공군 F-22 랩터가 시범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 최강의 전투기를 단기간에 아무런 노력 없이 개발할 방법은 없다. 첫 시작은 미약할 수 있으나 조급증 때문에 자체 기술개발을 멈춰선 안 된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AESA 레이더 개발은 지난해 6월 기본설계(PDR)를 끝냈고 이제 상세설계(CDR)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KAI는 지난 2월 시제기의 동체 앞쪽 구조물인 ‘벌크헤드’ 가공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으로, 결코 성공이나 실패를 논할 단계가 아닙니다. 수십년간 실패를 거듭했지만, 절대 실패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봐야 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가 작년 미납금 3300억원 중 급히 1320억원을 냈지만 여전히 1980억원이 지급되지 않은 상태라 국민들의 우려가 큽니다.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6일 직접 국방부를 찾아 사업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고 하지만, 투자금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 못한다면 해마다 잡음이 끊이질 않을 겁니다. 국민 신뢰를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 정현용 기자 -